
한창 전성기를 달리던 1990년, 갑작스럽게 가요계에서 자취를 감춘 톱스타가 있었다.

‘인디언 인형처럼’으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그녀의 실종은 당시 연예계를 술렁이게 했다. 하지만 그 뒤에는 20년간 철저히 비밀로 감춰진 놀라운 러브스토리가 숨어 있었다.
1980년대 최고의 댄스가수 나미의 전성기

1967년 영화 ‘엘레지의 여왕’으로 데뷔한 가수 나미는 1979년 ‘영원한 친구’로 가수 정식 데뷔를 했다. 이후 ‘슬픈 인연’, ‘아리랑 처녀’, ‘빙글빙글’, ‘마지막 인사’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1980년대 최고의 댄스가수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그녀는 후일 DJ DOC의 제작자로도 유명해진 신철을 발굴해 ‘붐붐’으로 활동시키면서 ‘인디언 인형처럼’을 대유행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곡으로 한창 전성기를 달리던 1990년, 나미는 갑자기 가수 활동을 중단하고 종적을 감췄다
20살 연상 유부남과의 비밀 동거

최고의 인기 속에서 사라진 스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나미가 소속사 대표 최봉호와 동거 중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 스캔들은 최봉호가 나미보다 20살이나 나이가 많은 유부남이라는 점에서 당시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아내와 별거 중이었던 최봉호는 1980년부터 나미와 함께 살며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 두 사람은 동거 소문의 진실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 기자들에게 ‘전혀 사실무근이다’라고 발뺌하며 약 20년 동안 그들의 관계를 비밀로 유지했다.
비밀 출산과 백화점에서의 외면

1984년, 나미가 많은 사랑을 받던 시기에 두 사람 사이에는 아이가 생겼다. 하지만 당시 결혼 사실을 공개할 수 없었던 나미는 비밀 출산을 할 수밖에 없었고, 아들 최정철을 호적에 남동생으로 올려야 했다.
나미는 비밀 출산 후 다시 가요계에 복귀했고, 그가 낳은 아이는 어머니가 대신 돌봤다. 한 번은 백화점에서 아들이 멀찍이 가고 있는 나미에게 ‘엄마’라고 불러 혼이 났고, 남편 최봉호는 아이를 데리고 그 자리를 얼른 떠야 했다.
20년 만의 정식 결혼과 아들의 정체 공개

나미는 1995년, 이혼한 최봉호와 혼인신고를 하면서 아이를 제대로 호적에 올렸다. 그리고 이 아이가 바로 가수 최정철이었다.

최정철은 2002년 Q.O.Q로 데뷔했지만 처음에는 ‘나미 아들’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활동했다. 그는 “처음에는 가수 나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어요. 자랑하거나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일부러 말하지 않았죠”라며, “처음에는 ‘나미 아들’이라는 수식어도 거부감이 들었는데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어요”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어머니의 이름에 폐를 끼치지 않게 활동하겠다는 포부를 전하며, 20년간 비밀로 감춰졌던 모자 관계를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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